3D프린트·인공지능 첨단 기술이 의료 현장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해외 유수 대학은 물론 국내 주요 의과대학의 교육과정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의학 지식을 주입하는 암기식의 전통 교육 방식이 인공지능 시대에는 맞지 않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하버드대가 ‘플립러닝(flipped learning)’의 전격적인 도입을 선언했다.
전우택 연세의대 교수는 “지금까지 유능한 의사, 명의가 되려면 교과서의 많은 지식을 체계적으로 잘 기억하고 최신 논문들을 부지런히 찾아 읽으며 경험을 통해 임상적 분별력과 지혜를 갖는 것이었다”면서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발전은 이런 과거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 美 하버드 의대, 2019년 새 커리큘럼 도입
미국 하버드 의대(Harvard Medical School)는 오는 2019년부터 새 교육과정을 도입할 예정이다. 하버드 의대는 MIT와 손잡고 ‘헬스 사이언스 테크놀로지 (HST) MD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는 의과학 연구 역량을 강화하는 과정이 대거 포함된다.
흥미로운 점은 하버드 의대가 ‘플립러닝(flipped learning)’을 전면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흔히 거꾸로교실(역진행 수업 방식)이라 불리는 플립러닝은 학습자가 온라인으로 선행학습을 하고 오프라인에서는 교수와 학생을 대상으로 토론식 강의를 진행하는 역진행 수업 방식이다. 하버드 의대는 사전에 동영상과 과제물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학습을 하고 수업 시간에는 소그룹으로 나눠 토론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학부 1학년 때 기초의학과 임상의학 강의를 끝내도록 한 것도 하버드 의대의 새 커리큘럼의 특징이다. 2학년부터 임상 실습을 하게 되는 데, 이는 기존 커리큘럼보다 7개월 일찍 시작하는 것이다. 실습을 빨리 하게 되면, 환자와 질병을 장기간 볼 수 있으며 동료들과의 관계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된다. 또 3,4학년에는 집중 심화 학습과 연구를 하도록 했다. 이는 지식을 먼저 습득하고 실습하는 기존의 커리큘럼을 지식 습득 →실습→ 심화 탐구로 재배치한 것이다.
◆ 국내에도 변화 바람…게놈이야기·3D프린팅 기술 과목도 신설
서울대 의과대학은 ‘세계 30위권 내 의대 진입’이라는 비전을 내걸고 교육과정을 개편해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1학년의 교과 개편을 첫 시작으로 올해 2학년, 2018년 3학년 2019학년 4학년까지 새로운 교육과정을 단계적으로 적용해 2020년 신(新)교육과정의 졸업생을 배출하게 된다.
서울의대의 이번 개편도 자기주도학습·연구역량·임상실습 강화, 선택교육과정 확대, 평가와 피드백 강화 등이 핵심이다. 서울의대는 지난해부터 '나의 게놈이야기', '3D프린팅 기술 활용', '미래의료 빅데이터' 등의 과목이 신설됐다.
임상 경험을 빨리 접할 수 있도록 학생 인턴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연구역량을 강화해 의과학자를 양성하는 의학연구 멘토링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연세대 의대는 수년 전부터 학생중심의 자기주도학습을 유도하기 위해 강의시간을 축소하고 교과목을 통폐합해 통합교육과정으로 전환했다. 지난 2014년에는 국내 의과대학 최초로 과목별로 학점을 주는 상대적 평가체제에서 ‘패스/패스하지 못함(Pass/Non-Pass)’만 평가하는 절대평가체제를 도입했다. 경쟁위주의 학습에서 공동체 학습을 강화한 것이다.
윤리와 리더십 향상을 위해 인문사회의학교육 제도(Doctoring and medical humanities, DMH) 과정을 정규학습과정에 포함시켰다. 올해는 모든 학생들이 지도교수와 함께 자율적인 연구를 수행토록 새 의학교육과정을 운영할 계획이다.
성균관대는 지난해부터 문·이과계열 상관없이 전교생에게 소프트웨어(SW) 관련 과목을 듣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성균관대 의대생들도 소프트웨어 관련 과목을 이수하고 있다.
이 대학은 문제중심학습 교육과정(Problem-Based Learning)도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임상 환자들의 사례에 관한 생물학적·사회학적·인구학적 토론을 진행하게 된다. 이밖에 대학원 과정인 성균관대 삼성융합의과학원에서는 디지털헬스학과 석박사 과정이 신설됐다.
전우택 연세의대 교수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미래의 의사는 인공지능에 지배를 받는 의사들과 인공지능을 지배하는 의사로 나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교육 방식에도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는 의사들은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인공지능을 지배하는 의사들은 기존의 의사들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의 더 큰 사회적, 의학적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장정순 중앙대의대 교수는 “우리 때는 암기잘하고 많이 아는 게 유능한 의사가 되는 지름 길이었는데, 이제 의사는 다양한 역량을 갖춰야 하는 시대가 왔다"면서 “인공지능이 등장했다고 의사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지만, 기존 의사의 역할에는 분명히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조선비즈 허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