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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스탠퍼드 메디신X2016' 학회 참관 후기
등록일 2016/11/22
조회수 2,532

'스탠퍼드 메디신 X 2016' 학회 참관 후기 

 

□ 일시 : 2016. 10. 15. ~ 10. 18.

□ 장소 : 캘리포니아 스탠퍼드대학

□ 참석자 : 최윤섭 교수 


△스탠퍼드 메디신 X에서는 환자들이 강단에 서서 경험을 들려줬다.

아이패드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패널 토의에도 참여한 자폐증 환자 딜런 바마쉬(오른쪽 둘째).

 

매경 헬스저널 칼럼니스트이자 디지털헬스케어연구소 소장인 최윤섭 박사가 지난달 15~18일 캘리포니아 스탠퍼드대에서 개최된 '스탠퍼드 메디신 X 2016' 현장을 소개합니다.

 

지난달 15~18일 스탠퍼드대에서 '스탠퍼드 메디신 X 2016'이 열렸다. 의료와 디지털 기술의 융합으로 일어나는 혁신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최신 기술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였다.

 

버락 오바마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정밀의료, 신기술을 접목한 기기들이 쏟아져나오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와 환자 주도 혁신, 관련 규제, 디자인 등 다양한 주제가 7개 장소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방대한 행사였지만 모든 주제를 관통하는 큰 흐름은 '의료 혁신'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 질병, 투병생활, 죽음…인생관까지 공유

스탠퍼드 메디신 X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everyone included)'를 모토로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축제의 장을 만든 것이었다. 의료에 참여하는 이해관계자들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다. 의사와 간호사, 환자와 보호자, 과학자와 기업가 외에도 사회운동가, 디자이너, 병원, 보험사 등 많은 업계 관계자들이 의견을 나눴다. 특히 참가자 중에는 의사이면서 환자, 혹은 환자이면서 창업가 등 두 가지 이상의 범주에 해당되는 사람이 많아서 더 총체적인 시각으로 의료에 접근할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본인의 삶과 질병, 투병생활, 인생관 그리고 죽음의 과정까지 공유하는 시간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런 이들을 찾아서 초청하고,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만들어준 주최 측, 그 기회를 십분 활용해 자신의 의견을 효과적으로 피력하는 환자, 진지하게 귀 기울이며 눈물을 흘리는 청중 모두가 대단해 보였다.  

 

◆ 젊은 의사의 죽음…숨결이 바람 될 때

행사 첫날, 루시 칼라니티라는 젊은 여성이 강단에 섰다. 스탠퍼드병원의 내과의사이자 남편을 불의의 암으로 먼저 떠나보낸 부인이기도 하다. 같은 병원 신경외과 의사였던 그의 남편 폴 칼라니티는 레지던트 마지막 해인 서른여섯 살에 폐암 말기 판정을 받는다. 그가 생전에 자신의 삶, 투병과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 대해 담담히 썼던 글은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책으로 나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최근 한국판도 출간됐다.

 

루시는 그들이 의대에서 어떻게 처음 만났고, 사랑에 빠졌으며, 의료 전문가로서, 한 사람의 환자이자 인간으로서 어떠한 삶을 살고 마무리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는 "의사들이 어떠한 태도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환자와 그 보호자들을 대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며 "너무 장밋빛 희망을 주거나, 효과가 확실하지 않은 연명치료로 단순히 목숨만을 연장하기보다는 잔인할 정도로 솔직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레지던트 수료를 앞두고 암이 악화된 폴은 소생 치료를 거부하고 맑은 정신으로 존엄을 지킨 채 가족 품에서 생을 마감했다. 약에 취해서 자신도 모른 채 죽음을 맞기를 거부한 것이다. 의사에서 환자의 입장으로 그리고 보호자로서의 시각을 두루 경험한 그가 사랑과 병,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전했다. 강의 도중 눈물을 흘리면서도 말을 이어갔고, 감동한 청중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환자와 보호자가 의료기기를 직접 개발하는 등 의료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부모와 걸을 수 있도록 발명한 Upsee의 장비.

 

◆ 자폐아, 무대에서 이야기하다
딜런 바마쉬라는 청소년 자폐증 환자는 직접 무대에 올라 대중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자폐증의 대표적인 증상이 언어와 의사소통 장애다. 하지만 바마쉬는 더디기는 하지만 아이패드에 스스로 문장을 만들어서 세상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아이패드를 통해 미리 만들어둔 문장을 컴퓨터가 읽어주는 방식으로 발표했다. 보통 자폐증 환자들은 의사소통 능력의 부족으로 생각이 없거나 지능이 떨어진다는 오해를 받곤 한다. 하지만 바마쉬는 "우리가 겉으로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결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더 놀라운 것은 다른 발표자들과 함께 패널 토의에서 받은 질문에도 즉석으로 간단한 문장을 만들어 의견을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나와 같은 자폐증을 검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타이핑할 수 있는 자폐증에 대해서 과학자들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이 내용을 직접 한 글자씩 아이패드에 입력하는 몇 분에 걸친 시간이 어색할 수도 있었지만, 참을성을 갖고 기다려주는 청중도 인상 깊었다.

 

◆ 환자들이 직접 만드는 의료기기

지금 미국의 의료 혁신은 의사나 병원은 물론 환자 주도로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나이트 스카우트와 오픈APS의 리더들도 만날 수 있었다. 두 운동은 모두 당뇨병 환자들이 수동적으로 의료계나 의료기기 회사의 성과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질병을 해결하는 주체가 되겠다는 것으로, 미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나이트 스카우트는 연속 혈당계의 데이터를 인터넷에 업로드할 수 있도록 기기를 해킹하는 방법을 환자와 보호자들이 고안하고, 그 방법을 온라인을 통해서 무료로 공유한 오픈소스 프로젝트이다. 기존 연속 혈당계는 자녀의 혈당 수치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부모들이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게 단점이었다. 나이트 스카우트를 통하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해서도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다.

 

오픈APS는 인공췌장 기기를 환자들 스스로 만드는 오픈소스 프로젝트이다. 혈당을 자동으로 제어해주는 인공췌장은 당뇨병 환자들의 숙원이지만, 오랫동안 임상시험만 거듭하면서 환자들을 희망고문해왔다. 기다리다 지친 환자들은 직접 연속 혈당계, 인슐린 펌프, 라즈베리 파이, 외장 배터리 등을 연결해 간단하지만 실제로 작동하는 DIY 인공췌장을 만들었다. 제작 방법은 역시 무료로 온라인을 통해 배포되며, 이 프로젝트는 최근 오바마 대통령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 환자 주도 의료 혁신의 새바람

이 두 프로젝트는 모두 허가받지 않은 방식으로 의료기기를 개조하지만, 무료 오픈소스이며, 환자 본인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규제도 받지 않는다. 이렇게 DIY 의료기기를 만들어서 사용하는 환자들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실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한다. 환자 주도 의료 혁신의 결과물을 전파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플랫폼도 각광받고 있다. '페이션츠 이노베이션'이 대표적으로, 환자들의 발명을 공유하고 전파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이 회사의 홈페이지에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환자들이 고심 끝에 만든 발명품이 가득 전시돼 있다.

 

많은 혁신적인 의료기기나 보조기구의 발명이 그 필요성을 자각한 환자나 보호자들에 의해서 스스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기업의 주목을 받지 못한 희귀 질환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며, 때로는 세상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발명이 이뤄지기도 한다.

 

◆ 찾아가는 왕진 서비스, 의료계의 우버

우버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의료계에서도 우버의 온디맨드 모델을 차용하려는 시도가 많다. 그중 LA를 중심으로 환자들에게 온디맨드 왕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미국이 의료 접근성이 낮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와 달리 병원에 가거나 의사를 만나는 것이 매우 어렵고 의료비도 비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급한 환자들은 응급실을 찾을 수밖에 없고 이에 의료비가 상승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힐은 카카오 택시처럼 원하는 시간과 장소로 환자에게 의사를 보내준다. 힐은 "불필요한 응급실 방문을 줄이는 것은 물론 환자의 만족도나 재구매율이 높다"며 "우리는 연간 800%씩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와도 재입원율 감소, 불필요한 응급실 방문 감소 목적의 프로그램을 공동 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는 흥미로운 사업 모델이지만 국내 의료 시스템에서는 필요 없는 모델이기도 하다. 난세에서 영웅이 나오듯이, 문제가 많은 미국의 의료 시스템에서 역설적으로 혁신적인 해결책이 빛을 본다는 생각을 했다.

 

◆ 한국 의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러한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의료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분다는 것을 느낀다. 아직 한국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체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의료에서 기술, 디자인, 환자의 참여가 어우러지며 함께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의료 혁신의 변곡점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행사 내내 머릿속에 계속 남았던 것은 한국에서도 과연 이러한 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열린 마음을 가진 의료 전문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의료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환자, 세상에 없는 의료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사업가.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지는 축제의 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부럽기만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 의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무거웠다.

 


SAIHST 디지털헬스학과

최윤섭 교수

 

 

'스탠퍼드 메디신X2016' 학회 참관 후기(메인화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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