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2017년 6월 9일 전자신문 "중력파 발견과 정권 교체"
http://www.etnews.com/20170604000075?m=1
지난해 2월 12일 세계 언론은 흥분 속에 중력파 발견을 보도했다. 1916년에 아인슈타인이 중력파를 예측한 지 100년 만의 관측이었다. 아인슈타인 자신도 중력파를 관측할 수 있을지 매우 회의적이었는데, 결국 그의 상대성이론은 거듭 입증되었다.
지금부터 13억 년 전에 초대형 블랙홀 두 개가 서로 충돌했다. 이때 만들어진 중력파가 우주 공간으로 퍼져나가, 2015년 9월 14일 지구에 도착한 것이다. 측정 장치인 '라이고(LIGO)'의 길이는 4㎞에 달하는데, 중력파에 의해 밀고 당겨져서 미세하게 길이에 변화가 생겼다. 핵 크기의 천분의 일 정도로 미세하게 변했는데, 이를 레이저로 측정했다.
중력파를 측정하려는 실험은 1960년대부터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2014년에 개봉된 영화 '인터스텔라'를 기획했던 물리학자 킵 손이 1970년대에 중력파 측정 공동연구그룹을 만들어 실험 계획을 세웠다. 1980년 '미국과학재단(NSF)'이 이 소규모 기획 과제를 지원하면서, 중력파 측정 계획이 시작됐다. NSF는 외부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했다. 라이고 계획을 철저히 검증한 결과, 이 위원회는 라이고 계획을 적극 추천했다. 그 후 1987년 사업단장 임명, 1994년 4000억원을 넘는 건설 예산이 배정됐다. 하지만 2002년 시설이 완공된 후, 여전히 중력파는 관측되지 않았다. 과학자들 간에도 많은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2004년부터 2015년까지 2000억원 이상의 추가 예산이 배정돼 정밀도를 10배 높였다. 그동안 라이고에 투자된 총 비용은 7000억원을 넘었다. 2015년에 성능이 향상되고, 관측이 재개된 후 이틀 만에 중력파가 발견된 것이다.
우리나라에 새 정부가 들어섰다. 과학기술분야에도 여러 정책이 제안되고 검토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겠다는 공약도 있었다. 4차 산업혁명은 다보스 포럼 창시자인 클라우스 쉬밥이 던진 화두로 유명세를 얻었지만, 정작 그 실체는 아직 불분명하다. 과학기술은 슬로건으로 진보하지 않는다. 중력파 발견에서 보듯이, 정부가 과학자들의 창의적 제안을 일관성 있게 지원하는 '상향식' 체계를 통해 좋은 성과가 나온다. 물론, 이 과정에는 독립적인 외부 전문가들에 의한 철저한 검증이 있어야 한다.
중력파 측정은 킵 손이 중력파 측정 그룹을 만든 지 40여년 만에 결실을 보았다. 그 동안 미국 정권은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에서 6번 바뀌었다. 정권이 바뀌는 수십 년 동안 NSF는 정치권의 슬로건을 따르기보다, 과학자들의 제안과 철저한 과학적 검증을 따랐다. 투자 후 오래 동안 기대했던 연구 결과가 안 나왔지만, 독립적인 외부전문가들의 객관적인 검증 의견을 신뢰했다.
이런 NSF의 지원 방식을 우리는 언제까지 부러워해야만 하나? 현재 지난 정권의 여러 과학기술 사업과 정책이 도마 위에 올라있다. 정권과 관계없이, 일관성 있고 자율적인 연구 정책, 독립성이 보장되는 상향식 연구개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부와 과학기술계가 해야 할 일이다.
출처: 전자신문(et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