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2017년 8월 23일 디지털타임스 "체계적 진료의 키 '의료빅데이터'"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7081002101851607002
50대 K씨는 최근 소화가 잘 안된다고 느껴 인근의 종합병원을 찾았다. 그러면서 혹시 진료에 도움이 될 까 해서 같은 병원 내 다른 진료과에서 치료 받고 있는 내용을 메모해 갔다. 하지만 K씨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짧은 시간 진료를 받아야 하므로 평소 느끼는 증상을 포스트잇에 빠짐없이 기록해서 의사에게 전달하려고 했지만, '이걸 왜 저에게 보여주는 거예요?'라는 무안한 반응이 돌아왔다. 여러 증상의 발현으로 복수의 진료과에서 동시에 진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은 특정 증상이 다른 진료과에서 진단받은 내용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의심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그 의심은 풀리지 못한다. 물론 가정의학과가 있지만, 현재의 진료시스템 하에서는 통합적이고, 전인적인 치료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인구노령화로 만성질환이 증가하면서 복수의 진료과에서 진료를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고 있다. 여러 과에서 약을 처방받을 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약품 사용 평가(DUR)를 통해 중복약이 걸러지고 있을 뿐, 대부분 같은 병원이라도 진료과가 다르면 의료정보가 단절되고 분절되어 있는 상황이다. 의사는 일자별로 병원 기록을 일일이 조회할 수 있지만, 짧은 진료시간을 감안하면 환자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기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입원해서 퇴원한 환자들의 경우는 다르다. 퇴원요약지에 핵심적인 정보가 정리돼 의료진이 환자 상태를 한 눈에 파악하기 좋다. 그런데 외래진료의 경우 진료과별로 의료정보가 나누어져 현재의 환자 상태를 한눈에 보여주는 요약지가 없다. 일부 대학병원에서만 외래와 입원 기록에서 추출한 중요 정보를 상황판(Dash board)으로 만들어 진단명, 알레르기, 검사 및 투약내역을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북미와 유럽의 경우에는 이미 퇴원요약과 외래기록을 요약한 '환자요약(Patient Summary)'을 사용 중이다. 특히 유럽은 회원국 시민이 미국에서도 자신의 진료요약정보를 받아볼 수 있도록 프로젝트(EU-US, The Trillium Bridge Project)를 실시한 바 있다. 사용자적 입장을 철저히 고려한 프로젝트다, 유럽과 미국은 환자요약을 촌각을 다투는 응급 진료에 활용한다. 의료데이터의 시기적절한 사용이야말로 환자 개개인의 건강과 직결됨이 분명하다. 따라서 입·퇴원 환자의 '환자요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겠다.
의료 빅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그 중요성이 함께 부각됐지만 개인 의료정보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 측면은 여전히 미진하다. 빅데이터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양질의 개인 의료데이터가 차곡차곡 모여서 생성된다. 우리는, 개인의 의료정보가 표준화돼 체계적으로 관리될 때 고품질의 의료 빅데이터로 발전가능하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필자는 지금이라도 병원수련환경평가에서 '외래기록의 요약' 생성이나 진료시 외래요약과 퇴원요약을 통합한 '환자요약' 활용 여부가 평가항목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기관평가에서, 현재의 분절된 의료정보와 환자진료 체계의 개선을 위해서라도 환자 요약지가 표준코드 기반으로 작성됐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외래진료정보 요약은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조치다.
정보가 힘이다. 환자에 대한 정보도 마찬가지다. 환자에 대한 정확한 의료정보는 국민 개개인의 건강과 직결된다. 첨단 정보기술이 힘이 되는 세계에 살고 있지만, 여기에 환자와 국민 개개인의 건강에 대한 치밀한 고려는 누락된 상태다. 빅데이터의 효용을 논하는 것에만 그치지 말고, 정보화의 편익이 국민 개개인에게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는 정책 설계가 절실하다. 무엇보다 국민 개개인은 자신의 건강과 질병에 대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인지할 권리가 있다.